루도비크 오르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루도비크 오르반은 루마니아의 정치인이다. 그는 브라쇼브에서 태어나 엔지니어, 언론인, 정당 고문 등을 거쳐 부쿠레슈티 부시장을 역임했다. 국민자유당에서 활동하며 당 대표를 지냈고, 2019년에는 루마니아 총리로 임명되었으나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2020년 총선 이후 하원 의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에는 국민자유당 대표 선거에서 패배 후 탈당하여 우파의 힘(FD) 정당을 창당했다. 그는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브라쇼브 출신 - 우르반
우르반은 15세기 중반의 대포 기술자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 사용된 바실리카 포를 제작하여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에 기여했으나, 그가 만든 포의 폭발로 사망했으며,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 브라쇼브 출신 - 미하이 코발리우
루마니아의 펜싱 선수 미하이 코발리우는 사브르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에는 루마니아 사브르 대표팀 코치와 펜싱 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루마니아의 정치인 - 트라이안 버세스쿠
트라이안 버세스쿠는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교통부 장관, 부쿠레슈티 시장을 거쳐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루마니아 대통령을 역임하며 친서방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두 차례 탄핵 위기를 겪었으며 퇴임 후에는 인민운동당 대표, 상원 의원, 유럽 의회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 루마니아의 정치인 - 니콜라에 치우커
니콜라에 치우커는 루마니아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루마니아 총리,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고, 총리 재임 기간 동안 투자 프로그램 추진과 권위주의적 경향, 논문 표절 의혹 등의 논란이 있었다. - 1963년 출생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1963년 출생 - 장하준
장하준은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신자유주의와 자유 무역을 비판하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서로 뮈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을 수상했다.
루도비크 오르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직함 | 루마니아 총리 |
대통령 | 클라우스 요하니스 |
부총리 | 랄루카 투르칸 |
임기 시작 | 2019년 11월 4일 |
임기 종료 | 2020년 12월 7일 |
이전 총리 | 비오리카 던칠러 |
다음 총리 | 플로린 치추 |
직함 1 | 하원 의장 |
임기 시작 1 | 2020년 12월 22일 |
임기 종료 1 | 2021년 10월 13일 |
이전 의장 | 마르첼 치올라쿠 |
다음 의장 | 마르첼 치올라쿠 |
직함 2 | 국민자유당 대표 |
임기 시작 2 | 2017년 6월 17일 |
임기 종료 2 | 2021년 9월 25일 |
이전 대표 | 알리나 고르기우 |
다음 대표 | 플로린 치추 |
직함 3 | 힘의 권리 대표 |
임기 시작 3 | 2021년 12월 14일 |
이전 대표 | 신설 |
직함 4 | 교통부 장관 |
총리 4 | 커린 포페스쿠-터리체아누 |
임기 시작 4 | 2007년 4월 5일 |
임기 종료 4 | 2008년 12월 22일 |
이전 장관 | 라두 베르체아누 |
다음 장관 | 라두 베르체아누 |
의회 경력 | |
직함 5 | 하원 의원 |
임기 시작 5 | 2020년 12월 20일 |
선거구 5 | 부쿠레슈티 |
임기 시작 6 | 2008년 12월 15일 |
임기 종료 6 | 2016년 12월 19일 |
선거구 6 | 부쿠레슈티 |
지방 정부 경력 | |
직함 7 | 부쿠레슈티 부시장 |
시장 7 | 트라이안 바세스쿠 아드리안 비데아누 |
임기 시작 7 | 2004년 7월 |
임기 종료 7 | 2007년 4월 5일 |
직함 8 | 3구역 지방 의회 의원 |
임기 시작 8 | 1992년 2월 23일 |
임기 종료 8 | 1996년 6월 16일 |
시장 8 | 콘스탄틴 투투나루 |
개인 정보 | |
출생일 | 1963년 5월 25일 |
출생지 | 브라쇼브,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
정당 | 힘의 권리 (FD) (2021년–현재) |
기타 정당 | 국민자유당 (PNL) (1998년–2021년) 자유당 1993 (PL '93) (1993년–1997년) |
배우자 | 미하엘라 오르반 |
자녀 | 1명 |
교육 | 브라쇼브 트란실바니아 대학교 (UNITBV) 국립 정치행정대학교 (SNSPA) |
종교 | 유니테리언 |
2. 생애
루도비크 오르반은 브라쇼브에서 헝가리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39] 브라쇼브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이후 부쿠레슈티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39][40]
초기에는 자유당에 몸담으며 부쿠레슈티 시의원을 지냈고, 이후 국민자유당(PNL)으로 당적을 옮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다.[41]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부쿠레슈티 부시장을 역임하며 행정 경험을 쌓았고,[41] 이후 터리체아누 내각에 발탁되어 교통부 장관직을 수행했다.[42] 2008년 총선에서는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으며,[44] 같은 해 부쿠레슈티 시장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4위에 그쳤다.[45]
국민자유당 내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당 부대표까지 올랐고,[46] 2016년에는 다시 부쿠레슈티 시장직에 도전했으나, 선거를 앞두고 부패 혐의로 국가 부패 방지국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등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다.[49][50] 그러나 2017년, 해당 혐의에 대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으며,[51] 이를 발판 삼아 같은 해 국민자유당 대표로 선출되어 당권을 장악했다.[53]
2019년 10월, 사회민주당 정부가 의회 불신임으로 무너지자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은 오르반을 차기 총리로 지명했고,[54] 11월 의회의 신임을 얻어 총리직에 올랐다.[55] 하지만 그의 내각은 오래가지 못하고 출범 3개월 만인 2020년 2월 의회 불신임으로 다시 실각했다.[56] 요하니스 대통령은 그를 총리 후보로 재지명했으나,[57] 오르반은 곧 후보직을 사퇴했다.[58] 이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잠시 과도 내각을 이끌기도 했으나, 2020년 12월 총선에서 국민자유당이 사회민주당에 패배하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59] 총리 사임 이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하위 문단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2. 1. 초기 생애 및 경력
오르반은 트란실바니아의 브라쇼브에서 헝가리계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39] 그의 아버지는 세케이인이었다.[39] 그는 아버지의 트란실바니아 유니테리언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견진례를 받았으며, 헝가리어를 기본적인 수준으로 구사한다. 오르반의 아버지는 초기 공산주의 루마니아 정권 시기인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세쿠리타테 비밀 경찰의 요원으로 활동했다.오르반은 1982년 브라쇼브의 안드레이 사구나 국립 고등학교를 졸업했다.[39] 이후 브라쇼브 대학교에서 산업 기계 설계 기술을 전공하여 1988년에 졸업했다.[39] 1993년에는 부쿠레슈티의 부쿠레슈티 국립 행정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39]
대학 졸업 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터르구 세쿠이에스크에 있는 단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거나 훈련을 받았다.[40] 이 시기는 루마니아 혁명 기간과 겹친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는 고향 브라쇼브의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40] 1991년부터 1992년까지는 일간지 Viitorul Românesc|비이토룰 로메네스크ro에 글을 기고했다.[40]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자유당 고문을 지냈고[40],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부쿠레슈티 시 섹토르 3의 구의원을 역임했다.[41] 섹토르 1의 구의원으로도 선출되었으나 그 자리는 맡지 않았다.[41]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자유당 집행 위원회에서 활동했다.[41]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에너지 정책국, 장애인국, 공공 정보부, 국립 공무원 기관, 국립 통신 및 공보 전문화 센터 등 여러 정부 기관 및 공공 기관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40] 이 기간 동안 "어린이, 세상의 빛" (Children, the light of the world)이라는 재단에서도 활동했으며,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40]
1998년 자유당이 국민자유당과 합당하면서 국민자유당의 국민 평의회에 참여하게 되었다.[41] 2001년부터는 국민자유당 상설 중앙 위원회 멤버가 되었고, 2002년에는 당 정치 위원회로 옮겼다.[41] 2002년 11월에는 국민자유당 부쿠레슈티 지부장이 되었다.[41] 2004년 7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부쿠레슈티 부시장을 역임했다.[41]
2. 2. 정치 경력

오르반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부쿠레슈티 제3구역 지역 의원을 지냈다. 같은 해 제1구역 지역 의원으로도 선출되었으나 사임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자유당 1993 (PL '93)의 고문이었으며,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당 집행위원회 소속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루마니아 민주 협약에 합류했던 국민자유당 (PNL)의 분파인 PNL-AT에서도 고문으로 활동했다. 1998년, PL '93이 PNL에 합병된 후 PNL 전국 위원회에 합류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PNL 상임 중앙 사무국 위원을 지냈고, 2002년에는 당 공공 행정 위원회에 합류했다. 2002년 11월부터 PNL 부쿠레슈티 지부장을 맡았으며, 2004년 7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부쿠레슈티 부시장을 역임했다.[36][41]
2007년 4월, 부쿠레슈티 부시장직을 사임하고 터리체아누 총리가 이끄는 내각 개편을 통해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42] 그는 2008년 총선에서 PNL이 패배할 때까지 장관직을 유지했으며,[3][43] 부쿠레슈티 선거구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4][44] 장관 재임 중이던 2008년 지방 선거에서는 부쿠레슈티 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득표율 11.4%로 4위에 그쳐 1차 투표에서 낙선했다.[5][45]
2009년 3월, 크린 안토네스쿠가 PNL 대표로 선출되면서 터리체아누 계파가 밀려났지만, 오르반은 당 부대표로 선출되었다.[6][46] 2014년 12월 PNL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알리나 고르기우에게 47표 대 28표로 패배했다.[7][47]
2016년 6월 지방 선거에서 부쿠레슈티 시장 후보로 다시 나섰으나,[8][48] 선거를 두 달 앞두고 국립 반부패국(DNA)의 조사를 받게 되자 후보직과 PNL 및 하원 관련 직책에서 모두 사퇴했다.[9][49][50] 이 여파로 2016년 총선에도 불출마했다.[10] 그러나 2017년 1월, 루마니아 대법원은 그에게 제기된 영향력 행사(알선 수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11][51] 무죄 판결 후인 다음 달, 오르반은 PNL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12][52] 크리스티안 부쇼이를 78표 대 21표로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3][53]

2019년 10월, 사회민주당(PSD) 소속 비오리카 던칠러 총리 정부가 의회 불신임으로 붕괴하자,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은 오르반을 총리로 지명했다.[14][54] 그의 내각은 11월 4일 의회 신임 투표에서 찬성 240표(필요 233표)를 얻어 공식 출범했다.[15][55]
그러나 오르반 내각은 출범 약 3개월 만인 2020년 2월 5일, 루마니아 의회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찬성 261표(반대 139표)로 가결되면서 실각했다.[16][56] 요하니스 대통령은 다음 날 오르반에게 다시 내각 구성을 요청했으나,[57] 오르반은 2월 25일 총리 후보직을 사퇴했다.[58] 이후 코로나19 범유행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3월, 오르반이 이끄는 새 내각이 다시 의회 신임(찬성 286표, 반대 23표)을 받았다. 당시 오르반 자신을 포함한 PNL 의원 다수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표결에 불참했으며,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PSD)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고려해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후 공조된 반대 활동을 예고했다. PRO 루마니아는 반대표를 던졌다.[17]
2020년 12월 총선에서 PNL이 약 25% 득표에 그치며 약 30%를 얻은 사회민주당에 뒤지자, 오르반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했다.[18][59] 동시에 치러진 선거에서 그는 하원 의원으로는 당선되었다.[19] 새 의회가 개원하자 그는 사회민주당(PSD) 경쟁 후보를 179표 대 110표로 누르고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다.[20]
2021년, 오르반은 PNL 대표 연임에 도전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그는 자유 보수주의 입장을 강화하며 전통적 가치 수호를 강조하고, 소위 "신 마르크스주의 진보주의"를 비판했다.[21] 그러나 9월 당 대회에서 현직 총리였던 플로린 키츠에게 약 60% 대 40%(2,878표 대 1,898표)의 득표율로 패배했다.[22] 패배 직후 그는 키츠 총리에게 하원 의장직 사임 의사를 전달했으나,[23] 키츠 측의 조치가 지연되자 10월 중순 하원 사무국에 직접 사임서를 제출했다.[24] 11월, PNL 지도부는 오르반을 당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했다.[25] 이에 오르반은 12월, 새로운 중도 우파 정당인 우파의 힘(Forța Dreptei, FD)을 창당했다.[26]
3. 논란
오르반은 도발적이고 과격한 언행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종 물의를 빚기도 한다.
2006년 3월 알바 주에서 열린 국민자유당(PNL) 여성 당원들과의 회담에서 그는 "중요한 공직에 오르기 위해 어떤 상사의 침대도 거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특정 여성 정치인들(미오아라 만탈레, 엘레나 우드레아, 랄루카 투르칸)은 그렇게 했지만 다른 이들(모나 무스카, 노리카 니콜라이)은 그렇지 않았다고 언급하여 여성 혐오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66]
2007년 12월에는 코트로체니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16세 소녀를 치어 입원시키는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총리였던 컬린 포페스쿠-테리체아누가 그의 사임을 요구했으나[67] 오르반은 이를 거부했다. 최종적으로 검찰은 형사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의 면허는 정지되고 벌금이 부과되었다.[68]
그는 전 대통령인 트라이안 버세스쿠와도 대립각을 세웠다. 2008년 여름 홍수 당시 오르반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버세스쿠의 비판[60]에 대해, 오르반은 버세스쿠를 "어둠을 지배하는 마지막 사우론이다!"라고 외치며 응수했는데, 이는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인용한 것이었다.[61]
또한 2009년에는 당시 버세스쿠와 연계된 민주자유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구성된 에밀 보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당시 사회민주당 대표였던 미르체아 지오아너를 버세스쿠의 "집사"라고 칭했으며,[62] 내각의 교육 정책[63]과 관광 진흥 정책(이를 불필요한 사치로 여김)[64]을 공격했다. 더불어 금융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연금과 공무원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65]
4. 가족 관계
부인 미하엘라(Mihaela)와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71][36][69] 그의 형은 레오나르드 오르반으로, 전 유럽 위원회의 다국어 담당 위원이었다.[71][37][70] 헝가리의 총리인 빅토르 오르반과는 친척 관계가 아니며,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 종종 자신에게 곤란함을 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38]
5. 역대 선거 결과
(PMP, AD, PNȚ-MM의 지지)